目連戯에서 본 近世東アジア의 芸能空間 (要旨) 2006.2.25

                     慶應義塾大学 野村伸一

 1 序

1. 저는 東亜細亜의中·近世演劇史는 아직 깊이 논의하기 以前의 段階에 있다고 생각합니다.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물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즉 「東亜細亜 各地의 公演演劇의 基底에 숨어 있던 것이 무엇이냐?」
그리고 「그것은 近世末부터 近代에 걸쳐서 形成된 演劇空間과 어떤 점에서 다르냐」라는 물음입니다.
오늘은 저는 두 가지 內容을 中心으로 말하고자 합니다.
첫째로는 目連戯입니다.
둘째로는 目連戯의 背後에 있는 宗教社会史、특히 観音信仰과 女性의救済라는 것입니다.
2. 우리는 国家가 認定한 伝統演劇의 基層에 있는 祭祀芸能을 생각해야 합니다.目連戯는 그 중의 하나입니다.
3. 中国福建省 또는 東南亜細亜 華僑의 社会에서는 오늘도 目連戯가 演行되고 있습니다(図版1-17).台湾에서는 個人의葬礼에서 目連戯가 演戱됩니다.(図版18-24)。
  그러면 日本이나朝鮮半島에서는 어땠냐?이렇게 물으면 演劇史의 関係者도 쉽게는 대답하지 못할 겁니다.
4. 이런 狀況 안에서 18世紀의 公演演劇 以前의 祭祀芸能으로 視野를 넓혀 가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그때 日本 神楽(가구라)는 하나의 有効한 실마리가 될 겁니다.
 5. 예를 들면 山口県行波(유카바)의 神楽에서는 柱松(하시라마쓰)를 세우고 거기서 줄을 칩니다(図版25-27)。

  注1 牛尾三千夫『神楽と神がかり』、名著出版、1985年、471頁参照。

그 아래서는 少年들이 춤을 춥니다. 그 다음에 荒神(고우진)役의 男子가 神殿(고우도노)에서 白布 위를 걸어와서 柱松위에 올라가고 내려옵니다*1(図版28-30).
  이것은 朝鮮半島의死霊굿에 있어서 다리(白布,橋)의用法을 想起시키는 것입니다.(図版31)。또 中国에서도 目連戯 같은 行事의 끝으로 白布를 씁니다(図版32-33). 
6. 일찍이 日本、朝鮮、中国에 共通된 想念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私見으로는 그의 淵源은 唐末五代쯤부터 顕著하게 된 無祀孤魂으로의 畏怖와 그 追善供養에 있습니다.
 7. 우선 中国의目連戯와 日本의「目連의 能(노오)」를 比較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朝鮮朝의 宗教文化에 있어서 目連戯가 없었던 것의 意味도 또 생각돼야 합니다.

 2 中国의 目連戯略史

 8. 저는 中国 目連戯의歴史를 四期로 나누어서 생각합니다.
  첫째로는 北宋時代의 生成期입니다.그 時代에 劇場(构肆 구사)의 배우(楽人)들이「目連救母」의 雑劇을 8日間이나 演行했습니다.한편으로 사람들은 盂蘭盆을 설치했습니다.盂蘭盆会는 民俗行事로 되어 있었습니다.
  둘째로는 南宋에서 元代에 걸쳐서 雑劇 또는 院本形式으로 演行했던 発展期입니다.南宋時代에 이르면 劉氏의 地獄巡廻가 仔細히 描写되어 있습니다.그것을 잘 나타내는 것이 『仏説目連救母経』(1251年)입니다.
  셋째로는 元末에서 明代後期、鄭之珍에 의한 『目連救母勧善戯文』(1582年)이 刊行되기 때까지의 流布의 時期입니다.특히 目連戯는 女神化된 女人観音의 信仰과 融合됐습니다.民間에서는 宝巻(예를 들면『香山宝巻』)이 演唱되고 各種 講唱文学이 流布됐습니다.目連戯는 또 儺戯와도 融合했습니다.目連戯는 여러 점에서 変容해 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넷째로는 鄭之珍의『目連救母勧善戯文』刊行後의 爛熟期입니다.鄭之珍 以後、目連戯는 南部에서도 北部에서도 隆盛하고 清代에는 各地에서 長大한 台本이 만들어지고 演劇化됐습니다(連台本戯)。
 9. 하지만 이런 시각과 별도로 祭祀芸能으로서 目連戯를 볼 必要도 있습니다.福建目連戯에서는 「三殿超度」에 사람들이 真摯하게 参与합니다.거기서는 女性의 救済를 위해서 「血盆」이 만들어집니다(図版34-36)。이런 것들은 歴史区分안에 쉽게 넣을 수 없습니다.

 3 日本의 目連伝承과 目連戯

10. 日本에서는 8世紀末부터 目連救母伝承이 알려져 있었습니다.하지만 그것을 芸能으로서 享受하게 된 시기는 中世以後일 겁니다.
 11. 그 가운데 『仏説目連救母経』이 注目됩니다.그것은 『仏説盂蘭盆経』에 입각한 伝承이 아니고 講唱系統의 이야기를 継承한 것입니다.御伽草子(오토기 조우시)에 『もくれんのさうし(모쿠렌노 소우시)』(1531年)가 있습니다.또 説経節(셋쿄부시)나 浄瑠璃(조루리) 안에서도 흔이 演唱됐습니다.説経節의 台本에는 『目連記』(1658-1661年頃)와 『目蓮記』(1687年)(図版37)가 있습니다.그리고 日本의説話研究者인 石破(이시바)는 이것들 이야기 안에서 劉氏가 단순한 悪役이 아니고 子息을 걱정하는 어머니로서 이야기되는 것에 注目하고 거기에 目連救母伝承의 日本的인 変容을 간취했습니다 *2。

  注2 石破洋『地獄絵と文学-絵解きの世界-』、教育出版センター、1992年、172-173頁参照。

12. 그런데 中国福建省에 傳承되는 目連戯에서도 母親劉氏는 단순한 悪役이 아닙니다.劉氏는 남편의 生前에는 来訪한 女僧 女道士에게 布施를 했습니다.劉氏에게는 不条理를 一身에 짊어진 불쌍한 女性의 모습이 느껴집니다.
13. 다시 말하면 中国에서도 変容이 있었던 것입니다.
14. 그 背後에 있는 宗教文化는 観音의 女神化이었다고 생각됩니다.

 3-1 「目連ノ能」와 그 이외의 女人救済神楽

15. 日本 広島 戸宇에는 毋親을 救済하는 浄土神楽가 있습니다.「目連ノ能」에서는 布施를 안 했던 女性이 地獄의 가마 속으로 떨어집니다.아들인 라후쿠太子가 救済합니다.戸宇에서는 「目連ノ能」이외에도 類似한 主題의 一連의 神楽가 있었습니다.

 3-2 「身売リ能」-父와 蛇(女人)을 救済하는 神楽

16. 그 이외에 日本의 中世에는 딸이 자기 몸을 犠牲으로 해서 父親의 霊魂을 供養하는 이야기가 演行됐습니다.「身売リ能(미우리 노오)」라고 합니다.이것은 中·近世의 日本에서는 잘 알랴진 이야기이었습니다.朝鮮의「沈清伝」과 같은 類型의 仏教説話입니다*3。

   注3 金台俊著、安宇植訳『朝鮮小説史』東洋文庫270、平凡社、1975年、178頁以下参照。

  다만 「身売リ能」에는 「沈清伝」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그 것은 이야기의 末尾에서 젊은 女性이 연못에 사는 毒蛇(実은 蛇体의神)을 救済한다는 점입니다.
 
 17. 日本에서는 蛇(蛇神)에 関連된 說話가 따로 또 있습니다.뱀이 女性인 경우도 있고 男性인 경우도 있습니다.또 뱀을 救濟하는 主人公이 女性이 아니라 童子라는 것도 있습니다.
  그 중 딸이 父親을 위해서 자신을 犠牲으로 해서 뱀(女性의化身)을 救한다는 說話는 아마도 中世末부터 近世에 걸쳐서 만들어진 이야기일 겁니다.그것은 烈女의 倫理가 強要된 時代의 産物이라고 봅니다.그것은 또 観音에 의한 救済의 信仰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3-3 中世以降에 体系化된 鎮魂神楽

 18. 浄土神楽에서는 「目連ノ能」「松の能(마쓰노 노오)」등에서 毋親이나 女性이 救済됩니다.이것들 能(노오)는 一連의 것들이라고 생각됩니다.朝鮮의死霊祭가 몇 개 굿으로 形成돼 있는 것 같이 神楽도 여러 개 神楽로 하나의 鎮魂祭儀를 形成하고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19. 그 状況에서 判断하면 中世末期(元末明初)에 中国에서 仏教経由로 受容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그것에 関連해서 두 가지 일에 注目해야 합니다.첫째로는 目連戯는 元末부터 明代、清代에 걸쳐서 널리 普及되고 同時에 変容된 것입니다.들째로는 中国南部에서는 女人観音의 信仰이 目連戯안에 들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3-4 中国의 観音과 目連戯

 20. 観音이 目連戯에 들어 갔던 理由를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첫째로는 滑稽戯의 性格의 克服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観音이 孝行아들인 羅卜(目連)의 苦悩를 지켜 보는 慈母같은 存在로서 信仰된 것입니다.
셋째로는 観音이 不条理한 죽음, 代受苦의 化身으로 간취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넷째로는 目連戯의 支持者가 女性이고 観音에 대해서 共感이 있었다는 것입니다.彼女들은 평상시부터 観音菩薩 또는 観音의 化身으로서의 女神(媽祖나 陳靖姑등)을 寺廟에서 또는 집안에서 信奉하고 있었습니다.이렇게 해서 観音은 쉽게 登場人物이 된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3-5 日本의 神楽에 보이는 柱와 白布

 21. 序頭에서 紹介한 것 같이 日本의 神楽에서는 기둥이 흔이 利用됩니다.이것은 天과 地을 잇는 것이고 신들의 上昇、下降의 通路이기도 합니다.

22. 한편 中国에서는 오늘도 道士들이 사다리 위에 올라가고 거기서 꺼꾸로 배달리기도 하고 또 曲芸같은 짓을 보이기도 합니다(図版38).그러나 그것은 単純한 구경거리가 아닙니다.예를 들면 그것이 過関(애들의 액막이 )같은 行儀의 一環으로서 演戱되기도 합니다(図版39).
 23. 또 白布를 霊魂의 通路로서 쓰는 것도 注目됩니다.그것은 日本의 中世神楽에서는 꽤 普遍的인 것이었다고 봅니다.隠岐(오키)에서는 神을 모신 사람이 病死했을 때 7日만에「橋経(하시 쿄)」라는 儀禮를 했습니다.그것은 요콘데 「橋(다리)」를 놓는 것입니다.
24. 그것은 朝鮮의 死霊祭의 末尾에서 반드시 쓰이는 白布와 같은 것이라고 봅니다.
25. 重要한 것은 死霊供養의 複合的인 儀礼、観念이 元末、明初쯤에 셋트로 傳承됐다는 것입니다.그리고 그 文化複合의 内実은 복잡합니다.아마도 道士나 僧侶、또는 両者를 兼한 宗教者에 의한 毋親이나 女性의 霊魂救済儀礼가 그중의 큰 부분을 차지했을 겁니다.目連戯는 그 중의 一部이었다고 생각됩니다.
26. 그리고 中国에서 온 이런 文化를 受容했던 사람들이 男性이었는지 아니면 女性이었는지는 그후에 祭祀芸能의 展開에 큰 影響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4 高麗부터 朝鮮朝에 있어서 死霊의 救済

27. 朝鮮朝의『安楽国太子経』은 아들이 毋親의 霊魂을 救済하는 이야기입니다.그 内容은 「安楽国太子経変相」이라는 仏画에 그려져 있습니다.그것은 現在 日本에 있습니다.아마도 사람들앞에 그림이 걸리고 說法이 행하여졌을 겁니다.
  그리고 그것과 같은 이야기는 済州島 巫俗안에서 「二公본푸리」로서 불리고 있습니다.그럼으로 그것은 祭儀안에서는 後代까지 널리 쓰였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28. 『安楽国太子経』에 있어서 母親은 観音菩薩이었습니다.여기서 観音은 아들을 떠나게 하기 위해서 自身을 犠牲으로 하는 女性으로서 나타납니다.그것이야 말로 代受苦 그대로이었습니다.『安楽国太子経』은 그런 毋親의 鎮魂을 說法하는 것입니다.
 29. 그것은 中世부터 近世의 朝鮮半島에 있어서는 実質的으로 目連救母伝承과 같은 意味를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30. 그러나 朝鮮王朝에 있어서는 主로 巫女(무당)이 死霊을 불러서 그 霊魂과의 対話(영실)(図版40)、救済를 했습니다.그 때문에 目連같은 男性宗教者의 活躍을 일부로 말할 必要가 없었던 것입니다.
31. 그런데 高麗末期부터 朝鮮王朝初期에는 観音의 複合的인 文化가 中国에서 傳해졌습니다.그리고 朝鮮朝의 民間에는 中国의 妙善公主와 一部分 類似한 王女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그것은 巫祖神話「바리公主」입니다.主人公바리태기는 父親에 의해서 버림을 당했는데도 그 父親을 救濟하고 巫祖가 됩니다(図版41-42)。그것은 巫俗의 世界에서 成長된 観音女神이라고 해도 무방할 겁니다..
32. 물론 각 地域의 基層文化에는 巫俗이 있고 그것은 古代로부터 連綿히 存在하고 있습니다.그것을 否定할 수는 없습니다.그러나 巫俗에 一定한 形式을 주고 神楽나 무당굿의 体系를 만들기 위에서는 仏教나 道教의 祭祀儀礼가 크게 作用했다고 보는 것이 妥当할 겁니다.

 5 結論

33. 祭祀芸能史에서부터 본 17,18世紀、그것은 宗教文化가 祭祀性을 잃어 가는 時期이었습니다.
 34. 中国에서는 地方마다 花部의 演劇이 繁盛합니다.日本에서는 歌舞伎가舞台에 進出합니다.그리고 朝鮮에서는 판소리가 불리어지고 또 批判精神에 찬 仮面戯가 演行됩니다.
35. 그러나 都市를 떠난 地方 共同体안에서는 여전히 死者供養의 祭祀芸能이 必要했습니다.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関心事는 春秋의 例祭뿐만 아니라 日常에 생기는 不条理、疾病에 対해서 어떻게 그것을 克服하느냐에 있었습니다.그 때 日本에서는 神楽가 有効한 祭儀로서 機能했습니다.神楽는 朝鮮朝의 무당굿 ,또 中国의 道士나 法師、巫師등의 祭祀儀礼와 같은 性格의 것입니다.
  이것을 中国에서 伝習한 사람은 日本에서는 僧、修験(슈겐)、陰陽師등이고 또 法者(호우샤)나 神子(미코)이었습니다.한편 朝鮮에서는 才僧과 巫女가 主要한 담당자가 됐다고 봅니다.
 36. 그리고 그 時代에 그들은 아직 市場地나 都市의 演劇과의 一定한 関係를 維持하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春香歌는 그 좋은 例가 될 겁니다.日本에서는 説経節나 浄瑠璃、地方歌舞伎들을 들 수 있습니다.
37. 그런데 이런 관련이 서서히 잃어져 갔습니다.그리고 目連戯나 「目連ノ能」같은 것은 文化의 밑바닥에 갈아 앉은 것입니다.
38. 中国에서는 1980年代에 이르러서 目連戯의 재검토가 시작됐습니다.하지만 그것을 公的으로 検討하는 움직임은 아직 별로 없습니다.한편 日本에서는 目連戯는 고사하고 中世의 鎮魂神楽를 韓国의 굿과 같은 基軸위에서 보는 試圖도 거의 없습니다*4。

 注4 井上隆弘『霜月神楽の祝祭学』、岩田書院、2004年은 神楽研究에 의거하면서 아사아를 지향하는 貴重한 成果의 하나입니다.특히 그 終章은 参照할만합니다.

  그리고 같은 것은 現代 韓国의 굿이나 演劇 研究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오늘알 韓國 國內의 研究는 보다 緻密하게 됐는데도 그것을 日本의 鎮魂神楽나 中国의 鎮魂儀礼와 關聯시키는 視点은 아직 微弱한 것 같습니다.
39. 그래서 우리들에게는 지금 東亜細亜 宗教社会史에 입각한 論議가 必要한 것입니다.이것이 저의 結論입니다.    以上